날씨가 추워지면 가끔씩 자판기 커피 향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고급스런 원두 향도 아닌데 어쩔 수 없는 서민 근성인가 보다 하고 웃어 넘기는데 주변 사람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오뎅 국물이 생각나고, 코코아가 생각나고, 자판기 커피가 생각나고, 주머니 손 난로가 생각난다고.
이제 곧 입동이라 그런가.
따뜻한 바닥에 배를 깔고 밀감 한 봉지, 여러 권의 만화책을 손에 끼고 낄낄거리던 그때가 유난히 그리워진다.
어릴 때 우리 집은 만화가게를 했었다.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일찍 만화책으로 한글을 익혔고, 초등학생일 때부터 (국민학생이라고 해야 하나?) 보수동을 드나들었다.
보수동 안쪽에 유일하게 자리잡은 분식점은 오뎅과 호빵 같은 커다란 만두, 도너츠 같은 것을 팔았는데 엄마를 졸라 손에 뜨끈뜨끈한 오뎅 꼬치를 들고 제 집처럼 골목, 골목을 누볐었다.
그래, 보수동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이 아마 이맘때쯤이었을 거다.
책 사달라고 조르는 나의 손을 잡고 어머니는 보수동을 데려가 주셨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책방들이 골목을 쭈욱 메우고 있는 모습에 얼마나 감탄했던지.
무너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쌓여있는 책의 탑은 내게 일종의 마법과 같은 것이었다.
딱 가운데 깔려 있던 캔디 캔디를 솜씨 좋게 빼 주시는 아주머니를 보며 나는 바보처럼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보수동 책방 골목.
그곳의 입구엔 책 냄새가 스며든 바람이 있다.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지나가는 상쾌한 바람.
작가의 꿈을 키워주었던 또 다른 소녀의 바람.
어른이 된 지금에도 나는 그 바람을 잊지 못해 보수동을 찾게 되는 듯 하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 있는 추억 속의 책과 내가 앞으로 손때를 묻힐 책들.
그래, 오늘 같은 날이면 그리운 향기에 취해 보수동 책방 골목, 그곳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