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ㅡ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9월 나는 내 생에 가장 먼 여행의 준비로 인해, 헌책방 나들이도 하지 않았다. 그 좋아하던 술도 마시지 않았다. 여행자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집에 일찍 들어가는 날이 많았다.
“오늘은 해가 이만큼 짧아졌구나.”
여행 출발날짜를 기다리며 달력을 다른 때보다 더 자주 봤던 9월에, 나는 황지우의 시집을 늘 가까이 두었다. 훨씬 이전에 샀지만, 유독 그 시기에 눈에 더 들어왔다.
나는 시집을 순서대로 읽지 않는 편이다. 손에 잡히는 쪽부터 그냥 읽어나갈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어떤 페이지는 잘 펼쳐져서 읽었던 시를 몇 번이고 다시 읽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때는 “엇. 이런 시도 있었나...?”내 손에 잘 펼쳐지지 않은 페이지가 나중에서야 고개를 내밀 때도 있다. 그런 때는 마치 없던 시가 하나 생긴 듯 느껴져,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대개 보통 책 한 권을 단박에 읽기는 힘들다. 아무래도 책갈피를 꽂아가며 읽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느낌이 끊길 때도 있고, 읽었던 부분을 까먹을 때도 종종 있다. 하지만 시집은 내게 굳이 쪽 순서를 지켜줄 것과, 비상한 기억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시집의 미덕은 바로 그런 점일 지도 모른다.
11. 1. 4337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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